
- 금조Lv.99
- 작성일 2026.09.20 12:22
- 조회수 416
- 추천수 0
-
황혼의 이야기.
며칠 뒤. 나는 다시 혼자 숲을 걷고 있었다.
새벽이 돌아간 뒤에도 숲은 그대로였다. 나무는 같은 자리에 있었고, 바람은 같은 방향으로 불었다. 정령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물론 아무도 없다.
두 걸음 뒤에도.
한 걸음 뒤에도.
옆에도.
발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내 것만.
처음에는 그게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아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숲길 중간에서 멈췄다. 작은 바람의 정령 하나가 손끝에 내려앉았다.
"왜."
정령은 대답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잠시 뒤 정령이 내 손을 떠나 숲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나는 그 방향을 바라봤다. 새벽이 자주 걸어가던 길이었다. 정령이 잘 모이고, 작은 꽃이 많이 피는 곳. 새벽은 그 길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꽃 하나를 발견해도 멈추고, 처음 보는 정령을 만나도 멈췄다. 그렇게 매번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으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쓸데없이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으려 했다.
두 걸음쯤 갔다.
그리고 멈췄다.
……귀찮군.
결국 방향을 바꿨다. 새벽이 걷던 길로.
길가에는 예상대로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다가 멈췄다. 평범한 꽃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새벽이라면 예쁘다고 했겠지. 왜 예쁜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아마 또 설명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 꽃은 어떻고, 저 꽃은 어떻고. 결국 다 비슷해 보인다고 말하면 조금 삐친 표정을 짓고.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바로 표정을 굳혔다.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정말 귀찮은 사람이다.
없는데도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한다.
마을로 돌아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혼 언니!"
전에 봤던 아이다. 나는 멈췄다.
"왜."
아이는 내 옆을 이리저리 살폈다.
"꽃 언니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갔어."
"어디로?"
"멀리."
아이가 금방 다음 질문을 했다.
"언제 와?"
모른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새벽이 언제 다시 이 세계에 올지는 모른다. 세계의 경계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약속했다. 다음에는 내가 찾아가겠다고.
그래서 말했다.
"내가 갈 거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황혼 언니가?"
"왜 그렇게 놀라."
"항상 꽃 언니가 언니 따라다녔잖아."
"……."
아이들은 가끔 너무 정확한 말을 한다. 나는 잠시 다른 곳을 봤다. 이번에는 내가 갈 차례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갈 거야."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럼 꽃 언니 좋아하겠다."
"그건 가봐야 알겠지."
"좋아할 거야."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꽃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도 가져가!"
"왜."
"꽃 언니 주게."
나는 꽃과 아이를 번갈아 봤다.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데."
"잘 갖고 있으면 되잖아."
간단하군.
아이에게는.
나는 한동안 꽃을 바라보다가 결국 받았다.
"알겠어."
"꼭 줘야 돼."
"그래."
아이는 만족한 얼굴로 뛰어갔다.
나는 손안의 꽃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내가 전달하는 차례인가. 생각해보면 우습다. 꽃 하나를 전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있나.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챙겼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정말로 그 세계에 갈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처럼 막막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으니까. 새벽이 그랬던 것처럼. 기다린다는 건 가만히 멈춰 있는 일이 아니다.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기 길을 걷는 것. 그러다가 시간이 오면. 그때 움직이면 된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밝은 낮이었다.
황혼도 아니고.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간은 결국 흐른다. 이번에는 나도 기다릴 수 있다.
새벽의 이야기.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동료들이 계속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처음에는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돌아왔으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레나?"
"응?"
"왜 아까부터 혼자 웃고 있는 거죠?"
나는 바로 입가를 만졌다.
"내가?"
"네."
"아닌데."
"방금도요."
"착각 아니야?"
말하고 나서 멈췄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
그 생각을 하자 또 웃음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별일 아니야."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그날 저녁 붙잡혔다. 다들 내가 사라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나도 계속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조금 고민됐다. 다른 세계로 갔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테고, 거기서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다고 하면 더 이상하게 볼 테니까.
그래서 가장 쉬운 것부터 말했다.
"사람을 하나 만났어."
"사람을요?"
"응."
"누군가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황혼."
예상대로 다들 이상한 얼굴을 했다.
"이름이 황혼이야?"
"진짜 이름은 아니야."
"그럼 별명인 걸까요?"
"그런 셈이지."
"어떤 사람이지?"
그 질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차갑다. 그렇게 말하면 틀린 것 같다.
따뜻하다. 그렇게 말하면 황혼이 싫어할 것 같다.
말이 적고, 고집이 세고, 강하고, 사람을 잘 챙기면서 자기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랑 닮았어."
동료 하나가 웃었다.
"친척이라도 만난 건가?"
"아니."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나랑 똑같이 생겼어."
조용해졌다.
"……뭐?"
역시.
그래서 처음부터 설명했다. 눈을 떴더니 낯선 숲이었다는 것. 공존의 축제날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 이야기를 들을수록 동료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나는 황혼 이야기를 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검을 뽑았던 것. 이름을 물었더니 본명 대신 황혼이라고 했던 것.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새벽이라고 정했던 것.
"왜 하필 새벽인 게냐?"
누군가 물었다.
나는 웃었다.
"황혼 다음에는 새벽이잖아."
"황혼 다음에는 밤이 있지 않사옵니까?"
"……황혼도 그 말 했어."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럼 밤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했지."
"대체 무슨 대화야."
"나도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해."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황혼은 항상 거리를 뒀다. 두 걸음 정도. 내가 가까이 가면 물러났고, 내가 물러나면 가끔 나를 신경 썼다. 말로는 귀찮다고 하면서 위험한 곳에는 자기가 먼저 들어갔고,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마을로 갔다. 내가 다칠 것 같으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럼 좋은 사람이군."
"그 말을 황혼 앞에서 하면 바로 부정할걸."
나는 웃었다. 그리고 같이 싸웠던 이야기도 했다. 그건 설명할수록 이상했다. 같은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같아서 잘 맞은 건 아니야."
"그럼?"
나는 잠시 생각했다.
"다른 부분이 서로 맞았던 것 같아."
나는 멀리서 길을 열었다. 황혼은 그 길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놓치는 걸 황혼이 봤고, 황혼이 닿지 못하는 곳은 내가 맞혔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란 사람들. 그래서 오히려 빈 곳을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친해졌나?"
질문이 나왔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
"아마?"
"왜 아마야?"
"중간에 나보고 다가오지 말라고 했거든."
"뭐시라!?"
이 부분은 조금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는 동쪽 숲 이야기를 했다. 같이 싸우다가 황혼이 갑자기 혼자 하겠다고 한 것. 뒤로 가라고 해서 물러났더니 왜 그렇게 쉽게 물러나냐고 화낸 것.
"잠깐."
누군가 끼어들었다.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났는데 왜 물러나냐고 했다는 거지?"
"응."
"레나! 그 사람 좀 이상한 거 같아! 니샤도 그렇게 생각한데!"
나는 웃었다.
"조금."
그리고 결국에는 정말 선을 그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 들었던 말은 아직도 기억난다.
"다시는 나에게 다가오지 마."
동료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진짜 싫다는 말 아니야?"
"나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솔직히 상처받았다. 꽤 많이. 그래서 정말 물러났다. 멀리서 보기만 했고, 직접 말을 걸지도 않았다. 꽃도 아이한테 부탁해서 전했다.
"꽃?"
"응."
"왜 아이에게, 꽃을 부탁한 거죠?"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냥."
"뭔가 있는데..."
"정말 그냥이야."
처음 받았던 꽃이 생각났고, 황혼한테도 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아마.
동료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넘어갔다.
"그래서 끝이야?"
"아니."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황혼이 나를 찾아왔어."
"진짜?"
"응."
"뭐라고 했죠?"
그날의 황혼이 떠올랐다. 조금 급한 숨. 두 걸음 앞에서 멈췄던 모습. 한참 말을 못하다가 겨우 꺼낸 말. 나는 그대로 말했다.
"네가 없으니까 조용하다고."
잠깐 정적. 그리고 바로 웃음이 터졌다.
"그게 뭐야!"
"나도 그때 그렇게 생각했어."
"그건 보고 싶었다는 말 아닌 게냐?"
"아마."
"아마?"
나는 웃었다.
"황혼이니까."
이상하게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내가 조금 시끄럽게 해주겠다고 했고, 황혼은 조금만이라고 했다. 그 뒤에는 다가오지 말라는 말도 취소했다. 예전보다 가까이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 날 서로의 진짜 이름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황혼이란 녀석은 뭔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웃었다. 한 명이 먼저 눈치챘다.
"설마."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
이번에는 정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조금 뒤에 동시에 떠들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군... 진짜 레나 너였나?"
"다른 세계의 레나 언니?"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누군가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다른 세계선의 자기 자신이라. 그건 꽤 흥미로운데?"
역시 저쪽은 반응하는 곳이 조금 달랐다.
"그러면 레나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그 사람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길을 간 나.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말했다.
"황혼은 황혼이야."
같은 이름. 같은 얼굴. 같은 시작. 그렇다고 같은 사람은 아니다. 황혼이 걸어온 시간은 내가 겪지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이 잃은 것들, 그 사람이 선택한 것들. 그 모든 게 황혼을 만들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가능성의 나이면서도 분명히 별개의 사람이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요? 소녀는 잘 모르겠사옵니다..."
누군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건 정말 모른다. 세계의 경계가 언제 또 열릴지. 아예 다시 열리지 않을지도. 하지만 나는 곧 덧붙였다.
"그래도 황혼이 온다고 했어."
"황혼 씨가?"
"응."
"뭐라고 했지?"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다음에는 내가 찾아가겠다.
그걸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웃었다.
"다음에는 자기가 찾아오겠대."
"진짜?"
"응."
동료 하나가 웃었다.
"그럼 기다려야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 끝이 붉었다.
황혼이었다.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황혼 다음에는 새벽이잖아.
황혼 다음에는 밤이다.
그럼 밤까지 기다려야 해?
그때는 농담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웃었다.
"기다리는 건 자신 있어."
동료들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다시 창밖을 봤다. 저 하늘 너머 어딘가, 아주 먼 곳에서 황혼도 자기 세계의 하늘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정말 길이 열린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황혼이 나타나면 그냥 웃으면서 말하면 된다.
늦었네.
생각보다 밤이 길었다고. 그러면 황혼은 아마 귀찮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그래도 왔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밤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밤이 끝난 뒤 무엇이 오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아이의 이야기.
꽃 언니는 잘 웃었다. 처음 봤을 때도 웃었다.
내가 꽃을 주니까 눈이 동그래졌다.
"나?"
"응!"
"왜?"
"예쁘니까!"
그러니까 언니가 헤헤 웃었다.
"그럼 고마워."
그리고 꽃을 머리에 쑉 꽂았다. 예뻤다. 그래서 나는 그 언니를 꽃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꽃 언니 옆에는 똑같이 생긴 언니가 하나 더 있었다. 진짜 똑같았다. 머리도 똑같고, 귀도 똑같고, 얼굴도 똑같았다. 처음에는 쌍둥이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닌 것 같았다.
꽃 언니가 머리에 꽂은 꽃을 가리키면서 물어봤다.
"황혼, 어때?"
그러니까 황혼 언니가 꽃을 쓱 보고 말했다.
"꽃이군."
나는 킥킥 웃었다. 꽃 언니도 웃었다.
"그건 나도 알아."
황혼 언니는 하나도 안 웃었다. 조금 무서웠다. 근데 계속 꽃 언니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꽃 언니가 말하면 대답도 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둘이 되게 친한가 보다.
며칠 뒤에 꽃 언니를 또 만났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꽃 언니!"
내가 우다다 뛰어가니까 언니가 나를 봤다.
"꽃 언니?"
"응! 꽃 받아 준 언니!"
언니가 웃었다.
"그럼 이제 나는 꽃 언니네."
"응!"
나는 그날도 예쁜 꽃을 들고 있었다. 꽃 언니가 꽃을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그 꽃, 하나만 줄 수 있어?"
"응!"
나는 바로 하나를 꺾어 줬다. 근데 이번에는 머리에 안 꽂았다. 손에 들고 가만~히 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말했다.
"혹시 나랑 똑같이 생긴 언니 만나면."
"황혼 언니?"
꽃 언니가 조금 깜짝 놀랐다.
"응. 그 언니."
그리고 꽃을 나한테 다시 줬다.
"이거 전해줄래?"
나는 꽃을 받았다.
"언니가 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꽃 언니가 조금 이상한 얼굴을 했다. 웃지도 않고, 화난 것도 아니고.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직접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왜?"
"음……."
꽃 언니가 잠깐 생각했다.
"조금 기다려야 해서."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래도 알겠다고 했다.
"응!"
꽃 언니가 다시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진짜로 황혼 언니를 만났다. 황혼 언니는 또 혼자였다. 나는 뛰어갔다.
"언니!"
황혼 언니가 멈춰 섰다.
"왜."
역시 목소리가 조금 무섭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다. 원래 저렇게 말하는 언니 같다.
"꽃 언니는?"
"꽃 언니?"
"언니랑 똑~같이 생긴 언니!"
황혼 언니가 잠깐 가만히 있었다.
"몰라."
"오늘은 같이 안 놀아?"
"그래."
"싸웠어?"
"아니."
엄청 빠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 싸웠는데 왜 같이 안 있지?
"근데 왜 같이 안 있어?"
황혼 언니가 이번에는 조금 늦게 말했다.
"원래 같이 다니는 사이가 아니야."
나는 더 이상해졌다. 같이 다니는 거 내가 똑똑히 봤는데. 그래도 황혼 언니가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구나."
황혼 언니가 다시 가려고 했다. 그때 꽃이 딱 생각났다.
"언니!"
황혼 언니가 돌아봤다. 나는 꽃을 짠 내밀었다.
"꽃 언니가 이거 주래!"
황혼 언니가 멈췄다. 꽃을 봤다. 나도 봤다. 또 꽃을 봤다.
"……언제?"
"아까!"
"뭐라고 하던데?"
"그냥 전해주라고 했어!"
황혼 언니가 조심스럽게 꽃을 받았다. 근데 아무 말도 안 했다. 계속 꽃만 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걱정됐다.
싫은가?
버리나?
근데 안 버렸다.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래서 나는 물어봤다.
"좋아?"
황혼 언니가 나를 봤다.
"……뭐가."
"꽃!"
"그냥 받은 거야."
"근데 안 버렸잖아."
황혼 언니는 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말했다.
"고마워."
나는 히죽 웃었다. 역시 좋아하는 게 맞다. 조금만 좋아하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나중에 동네 친구들한테 자랑하듯이 말했다. 똑같이 생긴 언니가 둘 있다고. 한 언니는 꽃을 받으면 바로 헤헤 웃고, 한 언니는 꽃을 받으면 계속 보고만 있다고. 그리고 둘이 싸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친구가 물었다.
"그럼 둘이 서로 싫어해?"
나는 잠깐 생각했다. 꽃 언니는 황혼 언니한테 꽃을 보냈고, 황혼 언니는 그 꽃을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챙겼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닌 것 같아."
"왜?"
"싫어하면 꽃 안 주잖아."
친구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런가 봐."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응. 그런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