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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소설 [아라편 - 만월제]
금조
Lv.99
  • 작성일 2026.09.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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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싸움이 끝난 뒤 찾아온 휴식은 낯설 만큼 평온했다.


아트마람의 온천수는 바위 사이로 잔잔하게 흘렀다. 따뜻한 수면에서 피어오른 김이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정령왕의 허락을 받은 엘 수색대는 온천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 머물 장소는 아니었지만, 지친 몸을 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엘소드는 검을 바위에 기대 놓고 팔다리를 길게 뻗었다. 아이샤는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책을 펼쳤지만, 몇 번이나 같은 장을 넘겼다가 되돌아왔다. 레나는 온천 가장자리의 평평한 바위에서 서늘해진 바람을 맞았다.


레이븐과 로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각자의 장비를 손질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한쪽이 필요한 도구를 찾으면 다른 쪽에서 자연스럽게 건네주었다.


이브는 모비와 레비가 수집한 기록을 살폈고, 청은 여행 중 흐트러진 물건들을 천 위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애드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인은 조금 떨어진 바위에서 온천 주위를 떠다니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때 작은 정령 하나가 라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이것 봐, 니샤! 처음 보는 친구들이 잔뜩 있어!”


라비가 정령을 따라 온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을 쫓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레나가 라비의 어깨를 붙잡았다.


“거기까지야. 젖은 바위는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야 해.”


“응! 그럼 여기 앉아서 볼게!”


대답은 씩씩했지만 라비의 발끝은 여전히 온천을 향해 있었다. 레나는 웃으며 라비를 자기 옆에 앉혔다. 


노아는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앉아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리티아는 작은 천 위에 여러 주머니를 늘어놓고 이번 여정에서 얻은 물건들을 분류했다. 반짝이는 조각 하나를 햇빛에 비춰 보던 그녀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으음…… 이만큼 고생했는데 값으로 따지면 겨우 이 정도야? 이건 좀 너무한데. 아무리 계산해도 수지가 안 맞잖아…….”


아이샤가 책 너머로 리티아를 바라봤다.


“쉬는 동안에도 돈 계산을 해야 해?”


“쉴 때 해 둬야지. 움직일 때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 나중에 손해 본 걸 알고 후회하면 이미 늦다고.”


리티아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다음 주머니를 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분주한 사람은 시엘이었다. 그는 남은 식량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고, 루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간식이 부족하다고 불평했다.


“큰일을 끝내고 얻은 휴식치고는 대접이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


“조금 전에도 먹었으니까?”


“그건 휴식을 시작하기 전에 먹은 것이니 지금과는 별개의 일이니라.”


시엘이 가방을 닫으며 말했다.


“그런 논리라면 쉬는 동안 식사는 한 번만 해도 괜찮겠네.”


루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시엘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을 본 엘소드가 웃음을 터뜨렸고, 아이샤도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두 지쳐 있었지만 평범한 소란을 나눌 여유만큼은 되찾은 모양이었다.


아라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들 무사히 이곳에 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라는 소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여행용 가방을 정리했다. 사용한 물건과 당분간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나누던 중,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작은 달력이 풀밭 위로 미끄러졌다.


모서리가 닳고 얼룩까지 남은 오래된 달력이었다. 이신마을을 떠날 때 챙겨 온 뒤로도 차마 버리지 못한 물건이었다. 아라는 달력을 무릎 위에 펼쳤다. 손가락이 날짜를 따라 움직이다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벌써 이날이 다가오고 있었군요. 날짜조차 잊고 있었다니…… 정말 정신없이 지냈나 봐요.’


“벌써 그런 때가 되었군요…….”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였지만, 바로 옆에서 검을 닦던 엘리시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때라니?”


“아,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아라는 달력을 접으려 했다. 그러나 엘리시스는 이미 그녀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알아챈 뒤였다.


“아무것도 아닌 얼굴은 아닌데.”


“그렇게 보였사옵니까?”


“조금?”


엘리시스는 검을 내려놓고 아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라가 입을 열 때까지 곁에서 기다렸다.


아라는 접으려던 달력을 다시 펼쳤다.


“이신마을에서는 이맘때가 되면 만월제가 열리옵니다.”


“만월제?”


처음 듣는 이름에 엘리시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동료들도 하나둘 아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을의 달이 가장 둥글어지는 날에 여는 명절이옵니다. 한 해 동안 무사히 곡식과 과일을 거둔 것에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요를 기원하지요.”


엘소드가 몸을 일으켰다.


“축제 같은 건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옵니다. 즐겁게 노는 날이기도 하지만, 멀리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해요.”


“가족이 모이는 날…….”


노아가 조용히 되뇌었다. 로제는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린 듯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라비는 금세 아라의 곁으로 달려왔다.


“모이면 뭘 해? 라비도 같이 할 수 있어?”


“물론이옵니다. 아침에는 그해 처음 거둔 곡식과 과일을 올려 감사의 뜻을 전하고, 가족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요.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러 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모두 밖으로 나와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지요.”


“함께 음식을 만든다고 했느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루였다.


시엘은 식량 가방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루, 중요한 건 가족이 모인다는 부분이야.”


“짐은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들었느니라.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느냐?”


“역시 음식 이야기만 들은 거구나…….”


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 님도 그 음식을 만들어 보셨나요?”


루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아직 없느니라. 하지만 맛을 평가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노라!”


“그건 만드는 게 아니잖아. 루...”


시엘의 지적에 노아가 소리 없이 웃었다.


라비는 기다리지 못하고 아라에게 물었다.


“어떤 음식을 만들어?”


“햇곡식으로 반죽을 만들고 그 안에 콩이나 깨, 잘게 다진 과일을 넣어 작은 떡을 빚는답니다. 모양은 이렇게…….”


아라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어 완만한 곡선을 만들었다.


“반달처럼 생겼사옵니다.”


이브가 그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보름달을 기념하는 행사인데 음식은 반달 모양이라니, 조금 이상하군요. 둥글게 만드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소녀도 어릴 때 같은 질문을 했사옵니다.”


아라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어린 시절, 아라는 마당 한편에 앉아 오라버니가 떡을 빚는 모습을 지켜봤다.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빚은 떡은 반달이라기보다 한쪽으로 찌그러진 덩어리에 가까웠다.


아라는 그 떡을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가장 둥근 달을 기념하는 날인데 왜 떡은 둥글지 않느냐고.


오라버니는 잠시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든 떡을 어린 아라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완전히 둥근 달은 그 순간부터 기울기 시작하지만, 반달은 앞으로 차오를 시간이 남아 있다고 했다. 아직 채워질 복과 행복이 있다는 뜻으로 반달을 빚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린 아라는 그 뜻보다 오라버니가 만든 삐뚤어진 떡이 더 재미있었다. 아라가 웃음을 터뜨리자 오라버니는 다음에는 반드시 예쁘게 만들어 주겠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에 만든 것도 비슷한 모양이었지요.’


추억에서 돌아온 아라가 동료들을 바라봤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채워질 행복이 남아 있다는 뜻이옵니다.”


이브는 아라가 만든 반달 모양을 다시 바라봤다.


“앞으로 채워질 행복이라…….”


조금 전까지 의문을 품고 있던 이브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런 의미라면 둥근 모양보다 반달이 더 잘 어울리겠군요. 좋은 풍습입니다.”


엘소드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마음에 들었다고 하면 되잖아.”


“네. 마음에 듭니다. 제가 방금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바로 인정할 줄은 몰랐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청이 작게 웃었다.


라비는 아라가 만든 반달 모양을 따라 해 보며 환하게 외쳤다.


“앞으로 행복해질 자리가 남아 있다는 거구나!”


“라비는 그 말이 좋아! 지금 행복해도 나중에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사옵니다.”


아라도 웃으려다가 무릎 위의 달력을 내려다봤다. 말로 꺼내고 나니 잊고 지냈던 풍경이 하나씩 떠올랐다. 곡식을 씻던 물소리와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소쿠리. 앙금을 몰래 집어 먹고 달아나다 붙잡힌 아이들의 웃음소리.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따뜻한 김과 밤길을 밝히던 등불.


그리고 언제나 그 풍경 안에 있던 가족들.


레이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여하기 어렵겠군.”


아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신마을은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여행을 시작한 뒤에는 날짜를 제대로 살필 여유도 없어서, 만월제가 가까워진 줄도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엘리시스가 물었다.


“돌아가고 싶어?”


아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을 떠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고, 함께 길을 걸어온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어느 쪽도 거짓된 마음은 아니었다.


“조금…… 그립기는 해요.”


엘리시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아주 간단한 답을 찾아낸 사람처럼 눈을 밝혔다.


“그럼 여기서 하면 되겠네!”


“네?”


“만월제 말이야. 꼭 이신마을에서만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잖아?”


예상하지 못한 말에 아라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규칙은 없사옵니다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요. 원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준비하는 행사이옵니다.”


“우리는 사람이 많잖아?”


엘리시스가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아라와 엘리시스에게 모여 있었다.


“좋아-! 재미있겠는데?”


엘소드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샤가 곧바로 지적했다.


“잠깐. 너는 뭘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잖아.”


“음식 만들고, 같이 놀고, 달 보면서 소원 비는 거 아니야?”


“놀라울 정도로 핵심만 들었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라비도 양손을 번쩍 들었다.


“라비도 할래! 반달떡을 잔뜩 만들 거야!”


“저도… 도움이 된다면 함께할게요.”


라비의 씩씩한 목소리 뒤로 노아의 조심스러운 대답이 이어졌다.


아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옵니다. 함께해 주신다면 소녀도 무척 기쁠 것이옵니다.”


레나가 온천가에서 일어나 아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신마을과 완전히 똑같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지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면 되잖아?”


청은 곧바로 종이와 펜을 꺼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놓았다.


“우선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 보죠. 아라누나가 말해 주시면 빠뜨리지 않도록 제가 적을게요.”


시엘도 식량 가방을 닫고 대화에 합류했다.


“마그멜리아로 돌아가면 비슷한 곡물과 과일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면 음식 준비도 맡을게. 음식이라면 자신있으니까 말이야.”


루가 곧바로 끼어들었다.


“시엘, 과일은 반드시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하거라.”


“루가 준비하는 동안 전부 먹지 않는다면 말이야.”


“감히 짐을 어떻게 보는 것이냐!”


루가 볼을 부풀리자 시엘은 태연하게 시선을 돌렸다.


리티아도 물건을 담던 주머니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 잠깐!! 지금 열여섯 명이 먹을 재료를 한꺼번에 사겠다는 거야?”


리티아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장에 갔다가는 돈 많고 물정 모르는 단체 손님으로 보일걸? 그러면 가격을 얼마나 올려 부를지 모른다고.”


아이샤가 말했다.


“그럼 네가 같이 가든가.”


“물론 가야지!”


리티아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같은 물건을 남들보다 비싸게 사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으니까. 어디 한번 두고 봐. 내가 따라가는 이상 정가를 그대로 내게 두진 않을 거야.”


“그건 믿음직스럽군요.”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티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후훗, 이제야 제 유능함을 알아보시네요.”


“구매할 물품과 수량을 먼저 정리해 주십시오. 운반할 인원이 필요하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청도 곧바로 말했다.


“저도 시장에 함께 갈게요. 사람이 많으면 옮겨야 할 짐도 상당할 테니까요.”


청은 잠시 엘소드를 바라본 뒤 부드럽게 웃었다.


“엘소드와 함께라면 무거운 짐도 충분히 옮길 수 있을 거예요.”


“물론이지! 무거운 건 나한테 맡겨!”


엘소드가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렸다.


아인은 동료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인간의 명절을 마계에서 열겠다니, 하여간 너희들은 가끔 터무니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네요.”


엘소드가 아인을 돌아봤다.


“그래서 아인은 안 할 거야?”


“내가 언제 안 한다고 했나요?”


“여기까지 이야기가 커졌으니 장소를 꾸미는 일은 제가 할게요. 물론 저 정령들이 얌전히 협력해 준다면 말이에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 정령 하나가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잎사귀는 빙글빙글 돌다가 정확히 아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라비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인도 정령들이랑 친해졌나 봐!”


아인은 머리 위에 얹힌 잎사귀를 집어 들었다.


“하하, 거울 친구씨는 가끔 엉뚱한 결론을 내리네요. 이게 친하게 보인다면 조금 곤란한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인은 정령을 쫓아내지 않았다. 작은 정령은 그의 손끝에 들린 잎사귀를 따라 장난스럽게 맴돌았다.


“거봐! 아인도 싫어하지 않잖아!”


라비가 자신 있게 외치자 아인은 잠시 침묵했다.


“……거울 친구씨에게는 그렇게 보이나 보네요.”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대답에 라비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나가 주변의 정령들을 살폈다.


“정령들에게 부탁하면 장식에 쓸 꽃이나 열매를 조금 나누어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마음대로 가져가려 한다면 막겠지만, 정중히 부탁한다면 이야기는 들어줄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완전히 싫지는 않은 모양이고요.”


레나는 정령이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여기에서 구할 수 있는 꽃과 열매를 먼저 확인하면 마그멜리아에서 사 와야 할 물건도 줄어들 거야.”


“잠깐, 사야 할 물건이 줄어든다고요?”


리티아가 화들짝 몸을 돌렸다.


“그럼 당연히 먼저 확인해 봐야죠! 여기에서 구할 수 있는 걸 굳이 시장까지 가서 돈 주고 사면 너무 아깝잖아요. 아, 물론 정령들에게 공짜로 내놓으라는 뜻은 아니고요.”


레이븐이 낮게 말했다.


“역시 비용 이야기가 나오니 반응이 빠르군.”


“아낄 수 있을 때 아끼자는 거예요. 나중에 정말 필요한 물건이 생겼는데 돈이 모자라면 곤란하잖아요?”


이브가 담담하게 지적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수익이 적다며 불평하던 사람의 말이라기에는 훌륭하네요.”


“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리티아는 억울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제 몫이 적은 문제랑 모두의 돈을 아끼는 건 완전히 별개라고요. 왜 자꾸 둘을 같이 보시는 거예요?”


리티아의 반박에 이브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아라가 펼쳐 둔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는 행사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이신마을의 풍습과 아트마람에서 재현한 방식의 차이를 남겨 두면 나중에도 참고할 수 있겠네요.”


“기록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네.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행사라면 충분히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브의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부드러운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때 나무에 기대어 있던 애드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손으로 떡을 하나씩 만든다는 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군.”


아이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그럼 넌 빠지든가.”


애드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누가 참여한다고 했지? 비효율적인 작업을 보다 못해 개선할 가능성은 있겠군.”


“그런 걸 참여한다고 하는 거야.”


“시끄러워!”


엘소드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그럼 반달떡 만드는 기계라도 만들게?”


“그 정도 구조라면 어렵지 않다. 반죽의 두께와 내부에 넣는 재료의 양을 일정하게 조절하면—”


“안 돼.”


아라보다 먼저 아이샤가 잘라 말했다.


애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지?”


“다 같이 손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행사라잖아. 기계로 전부 찍어 내면 의미가 없지않겠어?”


애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렇다면 반죽을 일정한 크기로 나누는 장치 정도면 되겠군.”


“벌써 만들 생각이잖아.”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뿐이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엘리시스가 웃으며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좋아, 좋아. 애드가 도와주고 싶다잖아. 전부 기계로 만들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내가 언제 도와주고 싶다고 했지?”


“그럼 안 할 거야?”


애드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


“그럼 결정됐네!”


엘리시스의 빠른 결론에 애드는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끝으로 조금 전까지 제각기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이 하나의 약속으로 모였다. 아라는 무릎 위에 펼쳐진 달력을 내려다봤다.


익숙한 날짜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올해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향의 명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새 만월제는 혼자 떠올리는 추억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기다릴 날이 되어 있었다.


이신마을과는 아주 먼 곳이었다.


함께할 사람도, 준비할 음식도, 달을 맞이할 풍경도 기억 속의 만월제와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쓸쓸하지 않았다.


아라는 달력의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접으며 밝게 웃었다.


아직 마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트마람의 나뭇잎 사이로 늦은 햇빛이 내려앉았다. 따뜻한 빛 아래에서 열여섯 명이 함께 맞이할 새로운 만월제가 비로소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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