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조Lv.99
- 작성일 2026.03.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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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텔레포트의 여파로 머리가 깨질 듯 울렸다. 일렁이던 시공간의 틈새가 닫히자, 시야를 가렸던 잔상이 서서히 흩어졌다. 나는 지팡이를 고쳐 쥐며 주변을 살폈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은 지나치게 생소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익숙했다. 심연의 밑바닥을 긁는 내 마력과 닮아있지만, 그 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고 투명했다.
“앙고르, 느껴져? 이 근처인 것 같은데.”
내 속삭임에 앙고르가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위 언덕 너머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생애 가장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짜잔~ 큐티, 뷰티, 프리티, 메타모르피! 등장!!”
눈이 멀 정도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중심에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하지만 차림새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프릴이 달린 분홍빛 의상, 허공을 수놓는 별무리,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저 대사. 미간이 부르르 떨렸다. 당혹감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실소로 번졌다.
“푸흡, 아하하하! 마법소녀? 마법소녀래!”
바위 뒤에서 터진 내 웃음소리에, 변신 직후의 고양감에 젖어 있던 저 '마법소녀'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녀는 홱 고개를 돌려 나를 찾았다. 검은 로브를 걸치고 기분 나쁜 오오라를 풍기는,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내가 배를 잡고 구르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누, 누구야! 남의 신성한 변신 장면을 훔쳐보고 웃다니!”
소녀가 뺨을 붉게 물들이며 외쳤다. 수치심에 부르르 떨리는 지팡이를 보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간신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일어섰다. 내 곁으로 앙고르가 스멀스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났다.
“아니, 미안. 너무 진심이라서 그만. 큐티? 프리티? 너 정말 그러고 다니는 거야?”
“이건 시공간의 에너지를 형상화한 궁극의 모습이라고! 너야말로 그 칙칙한 옷은 뭐야? 그 기분 나쁜 생물체는 또 어떻고!”
소녀의 손가락이 앙고르를 가리켰다. 앙고르는 불쾌한 듯 이빨을 드러내며 낮은 저음을 뱉어냈다. 나는 앙고르의 머리를 툭 치며 한 걸음 다가갔다. 대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쪽은 우주의 팽창하는 에너지를, 한쪽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심연의 중력을 두르고 있었다.
“궁극의? 마력을 해방했다더니 고작 이런 연극 놀이에 쓰고 있었나 보네. 실망이야, 나.”
“연극 놀이? 이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공간이 왜곡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발치에서 시작된 어둠이 그녀의 화려한 빛을 잠식해 들어갔다.
“해볼래? 네가 부수는 속도가 빠를지, 내 어둠이 널 삼키는 속도가 빠를지.”
우리는 서로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 속에서,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자, 최강 마법소녀의 실력을 좀 볼까? 그 화려한 옷이 찢어지면 울지나 마!”
플라즈마 커터.
나는 지팡이를 허공에 그었다. 내 등 뒤에서 응집된 칠흑의 마력이 다섯 갈래의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왔다. 섬뜩한 고음을 내며 쏟아진 플라즈마 커터는 전방의 모든 공간을 말살하듯 찢어내며 그녀의 사각을 빈틈없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올랐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유연한 몸놀림, 그 뒤로 흩날리는 별무리 잔상이 눈부셨다.
"울 리가 없잖아! 이건 우주 최강의 에너지가 담긴 특별한 코스튬이라고!"
임펙트 존.
그녀가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며 거대한 에너지 구체를 생성했다. 구체가 지면에 닿자 치명적인 중력장이 형성되었고, 공간이 기형적으로 비틀리며 모든 것을 중앙으로 압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앙고르에게 신호를 보냈다. 앙고르의 거대한 입에서 뿜어지는 심연의 중력이 다가오는 파동을 거칠게 상쇄시켰다.
"시공간을 다룬다더니, 고작 밀고 당기기나 하는 거야? 하품 나오네. 그나저나 그 프릴... 안 거슬려?"
"뭐? 이건 마법적 설계라고! 너야말로 그 기괴하고 악취미적인 의상은 뭐야? 진짜 보는 내가 다 부끄럽네!"
"이, 이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계약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너 같은 꼬맹이가 마신과의 깊은 유대를 알 리가 없지!"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진짜를 보여주겠어!"
매지컬 메이크업.
그녀의 외침과 함께 팬던트의 마력이 폭발했다. 화려한 빛이 그녀를 감쌌고, 더 성숙하고 강력해진 자태가 드러났다. 우리는 서로의 마력을 집요하게 탐색했다.
"자, 진짜 쇼는 이제부터야. 눈 크게 뜨고 보라고!"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지는 마나 파동이 내 피부를 따갑게 할퀴었다. 확실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압력이다.
"이게 '궁극'이라는 거야? 화려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네. 그 옷도 변신 전보다 더 나풀거리는 것 같은데?"
"입만 살았구나! 이 정도 에너지면 너 같은 건 흔적도 없이 증발할걸?"
메가톤 프레스.
하늘에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지면에 닿는 순간 분열하며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가공할 위력.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지팡이를 지면에 찍었다.
"증발이라니, 낭만 없게.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야!"
어비스 필드.
내 발밑에서 거대한 차원문이 입을 벌렸다. 앙고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솟구쳐 올라, 쏟아지는 에너지 파편들을 심연의 마력으로 하나하나 요격했다. 허공에서 빛과 어둠이 부딪히며 펑펑 터져 나갔다. 우리는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마주 섰다. 거친 호흡, 맺힌 땀방울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너, 그 계약이라는 거... 정말 제정신으로 한 거야? 이런 불쾌한 힘을 몸에 담고도 멀쩡하다니."
신기하다는 듯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그녀의 드레스 끝단이 내 마력에 가볍게 흔들렸다.
"불쾌? 아니, 이건 매혹적인 거야. 너처럼 반짝이는 환상에 취해 있는 애들은 죽어도 모를 감각이지. 앙고르가 속삭이는 이 어둠의 무게를 네가 감당이나 할 수 있겠어?"
나는 앙고르를 인간의 형상으로 현신시켰다. 내 곁에 나란히 선 앙고르의 노란 눈이 번뜩였다.
"자꾸 '악취미'라고 해서 말인데, 보여줄게. 진정한 어둠이 얼마나 화려하게 너를 반겨주는지 말이야."
내 손짓 한 번에 전장은 보랏빛 어둠으로 뒤덮인 심연의 축제장으로 변했다. 이제 그녀는 내게 적이 아니었다. 내 힘을 마음껏 시험해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대련 상대였다.
"좋아, 나도 더 이상 아끼지 않을게! 시공간을 초월한 궁극의 마법소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똑똑히 봐둬!"
마법소녀가 되어줘.
그녀의 몸 주변으로 기하학적인 마법진들이 층층이 쌓였다. 이내 그녀는 외침과 함께 한계를 넘은 형태로 변했다. 거대하고 투명한 시공의 날개가 그녀를 감쌌다.
"이게... 내가 도달한 경지야. 시공간을 초월한, 오직 나만이 다룰 수 있는 힘!"
지팡이 끝에서 눈부신 [꿈과 희망의 빔]이 뿜어져 나왔다. 하트 문양이 회전하며 내 심장을 겨냥해 쇄도했다. 눈부신 잔상이 시공간을 찢으며 다가왔다.
"아하하, 대단하네.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눈꼴시려."
오즈 플라즈마.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앙고르와 함께 마력을 공명시켰다. 거대한 다크 포탈에서 뿜어낸 칠흑 같은 플라즈마가 그녀의 빛과 격돌했다. 분홍빛 섬광과 보랏빛 어둠이 맞물려 공간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지팡이를 밀어붙이며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엔 한계를 넘으려는 눈부신 의지가, 내 눈엔 심연을 완성하려는 갈망이 있었다.
"너를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내 길은 네 어둠보다 단단해!"
"그럼 증명해 봐! 네 화려한 날개가 이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지!"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이게 마지막이야!"
거대한 폭발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먼지 구름이 걷히자 우리는 서로를 등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날개는 사라졌고, 앙고르 역시 내 그림자 속으로 돌아갔다.
"하아... 하...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힘이야."
본래의 앳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나 역시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렸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그 우스꽝스러운 옷에 그런 괴력이 숨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엉망진창인 서로의 몰골을 보며 피로 섞인 허탈함에 잠겼다. 나는 픽 웃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도 내 옆에 털썩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다른 세계의 내가 이렇게나 강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흥, 난 좀 복잡한 기분인데... 내가 분홍색 프릴에 미쳐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맛봤거든."
"그거 실례잖아! 이건 유치한 게 아니라 '꿈과 희망'의 형상화라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내어 웃었다. 시공간이 일렁이며 내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원래의 세계선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가나 보네."
그녀의 말에 나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어디서든 그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변하지 말라고."
나는 보랏빛 박쥐 떼처럼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눈동자엔 더 이상 당혹감이 아닌, 나를 향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비록 길은 달랐지만, 우리는 같은 영혼을 공유하고 있었다. 먼지 섞인 바람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지켜봐, 내가 이 우주를 얼마나 더 예쁘고 강하게 구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너답게 해봐. 나 역시 내 어둠 속에서 나만의 길을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