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조Lv.99
- 작성일 2026.03.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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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수면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한기는 오히려 타오르던 복수의 열기를 식히는 정화의 비처럼 느껴졌다. 나는 거센 물살 속에서도 결코 누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수면 위로 비치는 달빛이 산산조각이 나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둑의 거친 모래 위로 우리를 밀어낸 것은 벨더를 흐르는 이 오래된 강물의 마지막 자비였을지도 모른다.
"쿨럭... 누나, 누나! 정신 차려!"
나는 젖은 몸을 일으켜 누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 위로 흩어진 붉은 머리카락이 강물에 젖어 검게 보였다. 한참을 절망적인 침묵 속에서 기다린 끝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더 이상 노란 안광은 없었다. 그곳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깊고 투명한 루비빛 눈동자가 나를 담고 있었다.
"엘... 소드..."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가랖퍼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내 뺨을 만졌다. 피비린내 나던 기운이 사라진, 기사로서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인 따뜻한 손길이었다.
"미안해... 내가... 무슨 짓을..."
"말하지 마. 괜찮아. 누나는 돌아왔으니까. 그걸로 됐어."
나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누나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내 손등을 적셨다. 그것은 광기에 굴복했던 한 유능한 기사의 참회이자, 동생의 성장을 마주한 누나의 안도감이었다.
멀리서 우리를 찾는 동료들의 외침과 횃불의 잔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리는 붕괴했고, 왕국은 큰 상처를 입었지만, 우리는 잃어버릴 뻔한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았다. 나는 누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서서히 무너진 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엘소드. 넌 더 이상... 내 뒤를 쫓던 꼬마가 아니구나."
"응. 이제는 누나와 나란히 걷고 싶어. 아니, 누나가 힘들 때는 내가 앞장설게."
누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피와 어둠으로 얼룩졌던 어제의 우리와는 다른, 비로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지지 않아. 설령 세상이 다시 한번 어둠에 잠긴다 해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나는 누나의 손을 꽉 쥔 채, 밝아오는 새벽빛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맞잡은 손의 온기를 확인하며 함께 사선을 넘었던 그날로부터, 계절은 몇 번인가의 밤을 지나 희망의 다리가 재건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한때 검은 피로 물들었던 난간은 이제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강물은 비릿한 냄새 대신 맑은 생명력을 머금고 흘렀다. 나는 새로이 수여받은 나이트 엠페러의 망토를 휘날리며 다리 중앙에 섰다.
"아직도 여기만 오면 기분이 묘하네."
혼잣말을 내뱉으며 검자루를 매만졌다. 그때, 뒤에서 익숙하고도 단단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1년 전의 그 날카롭고 비틀린 살의가 아닌, 정제되고 깊이 있는 기운.
"엘소드. 벌써 와 있었구나."
고개를 돌리자, 붉은 기사단의 제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누나가 서 있었다. 한때 그녀를 잠식했던 마기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왼쪽 뺨에 남은 작은 흉터만이 그날의 처절했던 사투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누나. 오늘 원정 떠난다고 들었어."
"그래. 벨더 외곽에 남은 마족 잔당들을 소탕하러 가야지.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고."
누나는 옅게 미소 지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 보였다.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1년 전, 자신을 껴안고 심연으로 뛰어들었던 소년이 이제는 왕국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이.
"이제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벨더의 새로운 태양, 나이트 엠페러."
"에이, 누나. 아직 멀었어. 난 아직도 누나한테 배울 게 많은걸."
나는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였지만, 맞잡은 검자루에는 힘이 들어갔다. 누나는 내 곁을 지나쳐 다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1년 전의 그 핏빛 안개와는 대조적으로 찬란했다.
"엘소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을 얻었어. 그렇지?"
"응. 포기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거.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거."
우리는 잠시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각자가 짊어진 짐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누나는 원정군이 기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다녀올게. 돌아오면 대련 한 판 하는 거 잊지 마."
"당연하지! 다음엔 내가 이길지도 모른다고!"
멀어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더 이상 복수의 광기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사의 당당한 행보였다.
나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나 역시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을 향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를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우리의 검은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눈부신 아침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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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스 - 이터널 세이비어 (Eternal Savior)]
심연을 딛고 일어선 영원한 구원의 불꽃
피를 갈구하던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를 스스로 걷어내고, 소중한 유대를 통해 다시 태어난 진정한 구원자.
마기를 삼켜 파괴력을 극대화하던 어둠의 검술은 이제 엘의 순수한 기운과 결합하여, 적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닌 어둠을 정화하는 빛의 검술로 승화되었다.
마족을 몰살하겠다는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조차 부수려 했던 엘리시스는, 붕괴하는 다리의 심연 속에서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동생 엘소드의 온기를 느낀다. 그가 내민 손은 타락한 마기에 잠식되었던 그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구원해야 한다는 진정한 기사의 소명을 깨닫게 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피에 젖은 학살자가 아니다. 스스로가 겪었던 깊은 어둠을 등불 삼아, 길을 잃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선봉장이 되었다. 설령 자신의 과거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을지라도, 그녀는 그 상처마저 긍지로 바꾸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
'나를 구원한 그 손길을 잊지 않겠어. 이제는 내가 그 빛이 되어, 이 세계의 모든 어둠을 끝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