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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소설 [레나편 - 공존의 축제 #5]
금조
Lv.99
  • 작성일 2026.09.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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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떨림이었다. 숲 전체가 숨을 들이마신 것처럼 나뭇잎이 한꺼번에 흔들렸고, 잠들어 있던 정령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도 없었는데 나무 사이로 희미한 빛이 흘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옆에서 걷던 새벽도 같은 순간 고개를 들었다.


"느껴져?"


"그래."


며칠 전 공존의 축제 마지막 날에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선명했다. 불안정한 엘의 힘이 아니다. 세계의 경계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새벽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맑은 아침이었다. 태양도 정상적으로 떠 있었고, 구름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숲 깊숙한 곳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에서.


나는 먼저 방향을 틀었다.


"가자."


새벽이 곧바로 따라왔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둘 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숲. 그곳이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속도를 높였다. 숲이 깊어질수록 정령의 기운은 강해졌다. 하지만 폭주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길을 비켜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정령들이 나무 사이를 지나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새벽을 봤다. 새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무언가 한마디쯤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마 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 만났던 장소에 도착하자 빛이 보였다. 나무 사이,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희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물 위에 비친 풍경을 손으로 휘저은 것처럼 공간이 흔들린다.


새벽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이거."


"네가 왔을 때도 이랬나?"


"기억은 잘 안 나."


새벽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숲이었으니까."


나는 공간의 흔들림을 살폈다. 안쪽에서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낯설지 않은 엘의 힘, 정령의 기운, 그리고 이곳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숲. 아마 새벽의 세계다.


나는 바로 이해했다. 길이 열리고 있다. 돌아갈 수 있다. 좋은 일이다. 처음부터 그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새벽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순간이 오자 머릿속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기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드디어 왔구나. 그 생각만 들었다.


새벽이 내 쪽을 봤다.


"황혼."


"왜."


"아마 저기로 가면."


"돌아갈 수 있겠지."


새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이 흔들렸고, 빛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가."


새벽의 눈이 조금 커졌다.


"……바로 보내네."


"돌아가야 할 곳이 있잖아."


"있지."


"그럼 가야지."


새벽이 나를 한동안 바라봤다.


"황혼은?"


"나는 여기 있어."


"그건 아는데."


새벽이 작게 웃었다.


"조금은 아쉬워해도 되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쉽다. 당연히. 그런데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새벽은 내 침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또 그 말이었다. 처음부터 늘 그랬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나면 같이 물러났고, 멈추라고 하면 멈췄고, 기다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기다렸다.


나는 문득 그게 싫어졌다. 이번에는 그 말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새벽."


그녀가 돌아봤다.


"응?"


"아쉬워."


말하고 나서 내가 더 놀랐다. 새벽도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되돌릴 수 없다.


"네가 돌아가는 게."


잠시 말을 골랐다.


"……아쉽다고."


새벽의 표정이 아주 조금 무너졌다. 늘 웃던 얼굴이었는데,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내리깔았다.


"나도."


목소리가 작았다.


"나도 그래."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슬펐다. 그런데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이별은 똑같고, 사람이 떠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관계를 없애버린 것이 아니다. 끝까지 있었다. 새벽도 있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만났을 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무와 검흔, 낡은 장식, 그리고 내가 내려놓았던 화살.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처음 여기서 만났지."


새벽이 말했다.


"그래."


"황혼이 검부터 뽑았어."


"네가 기척도 없이 뒤에 나타났잖아."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알아."


새벽이 나를 봤다.


"이제는 믿네."


"지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그것도 못 믿으면 문제가 있겠지."


"그럼 내가 사람인 건?"


"그건."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아직 확인 중이야."


새벽이 웃었다.


"너무하네."


나는 그 웃음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너무 밝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얼굴인데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도 다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낯설지는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출발점, 같은 이름, 그리고 달라진 선택.

나는 새벽에게 물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진짜 이름."


새벽의 웃음이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만났던 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숨겼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먼저 숨겼고, 새벽이 거기에 맞췄다. 나는 황혼이 되었고, 그녀는 새벽이 되었다. 이제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레나."


예상했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듣자 이상했다. 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역시."


새벽이 나를 봤다.


"황혼은?"


나는 대답했다.


"레나."


새벽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였네."


"뭐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거."


"처음부터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잖아."


"그래도 이름까지 같으니까 이상하잖아."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는데 똑같은 이름이 돌아온다. 말로 설명하면 우스운 일이다.


새벽이 말했다.


"그럼 이제 레나라고 불러야 하나?"


나는 바로 대답했다.


"싫어."


"왜?"


"헷갈려."


"그건 그렇네."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새벽이 기다렸다.


"그냥 황혼으로 불러."


새벽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돼?"


"네가 만든 이름이잖아."


"황혼은 황혼이 지었는데?"


"새벽 말이야."


"아."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나도 그대로 부를 테니까."


잠시 뒤 새벽이 웃었다.


"알겠어, 황혼."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름이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만든 이름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레나라고 부르면 누구인지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황혼과 새벽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우리 둘만 알고 있으니까.


빛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벽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공간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나는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새벽이 뒤를 돌아봤다.


"황혼."


"왜."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말해."


"만약."


새벽은 잠시 고민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도 황혼이라고 부르면 돼?"


"그래."


"진짜?"


"몇 번을 묻는 거야."


새벽이 웃었다.


"중요하니까."


"그럼 너도 새벽이야."


"알겠어."


새벽은 공간 앞까지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봤다. 며칠 전 같았으면 여기서 멈췄을 것이다. 보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아쉬움을 숨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새벽."


새벽이 다시 돌아봤다.


나는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잘 나왔다.


"내가 찾아가겠다."


새벽의 눈이 커졌다.


"황혼이?"


"왜."


"아니."


새벽은 웃었다. 이번에는 아주 환하게.


"그냥 의외라서."


"싫으면 안 가고."


"아니."


바로 대답했다.


"와."


"……."


"꼭 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린다. 그 말을 다시 들었다. 처음 만난 날에도 그렇게 말했다. 기다리는 건 자신 있다고. 그때는 별 의미 없이 넘겼다.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새벽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빛 안으로. 그녀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강하게 당겼다.


가지 마.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붙잡는 것과 곁에 있는 것은 다르다. 새벽에게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그녀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그녀가 열어야 할 미래가.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보내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새벽."


"응?"


마지막으로 하나만.


"조심해."


새벽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웃었다.


"황혼도."


빛이 크게 번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다.


잠시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었다.


숲은 조용했다. 처음과 똑같은 장소였다. 나무도, 흔적도, 바람도 전부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같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새벽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조용했다. 며칠 전 느꼈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고요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새벽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 것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여기 남아 있다. 각자의 길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작은 꽃 장식. 며칠 전 마을에서 받았던 것과 비슷했다. 새벽이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었다.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었다.


숲을 나가는 길, 발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내 것. 나는 그것을 들으며 걸었다. 며칠 전이었다면 이 소리가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도 조용하다. 그런데 외롭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혼자 걷고 있는데, 예전보다 덜 혼자인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당신들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내가 강해질수록 내 곁의 사람들은 더 안전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내가 더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 것뿐일까요.


그때는 답을 듣지 못했다. 지금도 누군가 답해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강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 사람을 밀어내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내 곁에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두는 것. 그 사람이 떠나야 할 때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도 강함일 수 있다.


나는 계속 걸었다. 숲의 끝이 보였다. 아침 햇빛이 나무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 나는 예전 같았으면 그것을 그저 아침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름 하나가 먼저 떠올랐다.


새벽.


나는 잠시 멈춰 빛을 바라봤다.


밤은 길다. 어떤 밤은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밤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다. 어둠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있어도 괜찮다.


새벽은 그것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다시 걸었다.


언젠가 세계의 경계가 다시 열린다면 그때는 내가 찾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뒤에서 나타난 낯선 사람으로 만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이름을 

부를 것이다.


새벽이라고.


그러면 아마 그 아이는 또 웃겠지.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잔뜩 할 것이다. 나는 귀찮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함께 걸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숲을 빠져나오자 햇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리지 않았다. 그대로 바라봤다.


밤은 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밤의 끝에는 반드시 새벽이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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