엜문학)오래기다리셨습니다. [엘리오스의 끝]입니다.
이름나이
Lv.16
  • 작성일 2021.12.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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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처음 들린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게 흘렀다. 눈 깜빡할 사이라고는 못 말하겠지. 그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많은 게 변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곳도 이제 끝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역시 기분이 뒤숭숭했다. 오래 몸담았던 곳이 사라진다는 건 그런 법인 것 같았다. 좋은 추억이며 그렇지 못한 추억의 비율을 떠나서 말이다.


이것은 그 멸망 가운데 9명의 용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 여러분이 떠올리고 있는 그들임이 틀림없다. 엘리오스의 아홉 용사. 몇 명이 빠져있는 것 같지만 뭐 어떤가. 이곳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고, 필자는 그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 하지만 이 이야기에 레나의 이야기는 서술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리 알려두는 편이 좋겠다. 그녀는 그 무렵 잠이 들 시간이었다. 레나는 그런 쪽에 철저한 엘프고-엘프들이 대개 그렇듯이-마찬가지로 엘프들이 대개 그렇듯이 사실은 어느 일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엘프들의 그런 면은 세상이 끝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 ※ ※




발단은, 뜻밖일지 모르겠지만 애드였다. 예언서와는 다르게 그는 1라인, 즉 ‘루나틱 사이커’ 계열과는 다른, 3라인의 디아볼릭 에스퍼였다.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애드가 못할 게 뭐가 있겠냐 싶겠지만은 여느 공식 문서가 그렇듯 예언서라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예언서는 순 엉터리이다. 역사책처럼 있을 수 없는 일만이 가득하다. 요컨대, 현실에서는 마나 200을 소모하여 큰소리로 기술명을 외친다고 해서 하늘에서 중력장이 추락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다른 용사들도 마찬가지이며, 유감스럽지만 그게 사실이다.


애드는 샌더의 한 사막에서 이브와 마주했다. 그곳은 ‘지옥 사막’이라고 해서 행인이며 낙타를 두꺼비처럼 꿀떡꿀떡 삼켜버리곤 하는, 샌더의 행상인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사막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관계한 일이었다. 마나 200과 기합으로 중력장을 떨어뜨리지는 못할망정, 그들은 용사인 것이다.


이브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복잡한 계산은커녕 간단한 산수조차 할 수 없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애드가 그녀의 코드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브의 패배는 반드시 그녀가 노전직 상태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애드 쪽에서 기습 공격이 있기도 했고, 사실 이 이야기에서 애드를 제외한 모두가 노전직이다. 빌어먹을 예언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겠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 ※ ※



모래바람이 애드의 흰자 없는 눈을 가늘게 만들었지만 걸음까지 늦추지는 못했다. 이브 앞에 다다른 애드는 손을 뻗었다.


“허물을 벗을 시간이야. 여왕님.”


이브의 코어가 있는, 그녀의 이마를 향해서였다. 이브의 미약한 비명이 사막의 바람 소리에 삼켜진다. 애드는 곤충의 등껍질을 떼어내듯 간단하게 이브의 코어를 손에 넣었다. 끊어진 전선이 덕지덕지 붙어있다곤 해도 황홀한 녹색 일렁임에 넋을 놓고 만다. 애드의 말대로 허물처럼 축 늘어진 이브의 동체를 내버려 둔 채, 애드는 이공간을 통했다.


그가 이공간을 통해 빠져나온 것은 과거 킹 나소드가 여왕을 지키던 알테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산성비라도 쏟아진 것처럼 뻥 뚫린 천장이 알테라의 우중충한 하늘을 드러내고 있다. 다 무너져내린 알테라 코어 한가운데에, 유일하게 쇠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비석, 좀 더 정확하게는 비석 형태의 기계장치로, 애드의 허리에 닿을 높이의 그것에는 뭔가가 빠진 것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었다. 여왕의 코어를 삽입할 공간이다. 그것으로 코드가 가동된다.


“「스타더스트 샤워」 가동이다.”


애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이름의 코드였다.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코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어에서 나온 연분홍빛이 비석 모양의 기계장치를 잠식해간다. 애드는 여느 때의 자신만만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 ※ ※




오늘도 루벤은 화창했다. 아이샤가 지내고 있는 엘더도 그렇지만 루벤의 화창함은 뭐랄까, 이곳에서 해가 떨어진 적이 있었는지, 그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한결같은 화창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유성이 내려와도 루벤의 하늘은 꿋꿋이 그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엘리시스는 숲속에서 몸풀기로 검을 휘두르다 하늘의 이변을 목격했다.


“왔어...”


그녀는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달려 나갔다. 오두막에서 아직도 잠꼬대를 하고 있을 남동생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남동생이라곤 하나 내후년이면 성인이건만, 엘리시스의 그런 면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듯했다.


여기서 누군가는 엘리시스가 검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간다는 상황에 의구심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무릇 여자의 신분으로 한 기사단의 수석 기사까지 올라간 인물이며, 생사가 걸린 궁지에서는 언제나 손에 검을 쥐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그 용맹한 여검사가 의식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엘리시스는 그저, 여느 때의 좋은 감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바로 오늘 일어나는 일이 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가 그럴 마음이 든다면 루벤에서 엘더까지도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엘리시스는 오두막 문을 열어젖히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엘소드는 아직도 더블베드에 누워있었지만, 잠들어있지는 않았다. 한쪽 팔을 눈가에 올리고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엘소드! 떨어지기 시작했어!”


엘리시스는 어딘가 기쁜 듯이 말했다. 그리곤 침대에 달려들어 엘소드에게 키스했다. 타액이며 혀가 나뒹구는 소리가 방안을 고요히 채우는 가운데, 엘소드는 한 손을 뻗어 엘리시스의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 ※ ※




누군가는 마지막 대목을 읽고 경악한 나머지 아주 노발대발하며 필자를 그야말로 인류의 쓰레기로써, 아주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있고, 그것보다도 많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불어 엘을 훔친 도적놈을 잡으러 아직 변**도 오지 않은 아이들을 내보내는 엘리오스에 그런 세세한 법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필자는 오로지 사실만을, 덤덤히 전달할 뿐이다.




다음은 그 말 많은 나르시시스트 마법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건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라 볼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주 주변 분위기를 망쳐놓기는 해도 마법 실력만은 정말, 인격 파탄자 형 천재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아이샤는, 다른 용사들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까지는 필자도 아는 바가 없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면 그 길로 입을 다물어버리고는 상대도 해주지 않는 족속들이다. 어느 예외도 없이 그랬다.


그래서 아이샤가 애드를 저지하러 향했냐고 묻느냐면, 앞서 보았듯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왔다며 기뻐했다. 그 보라 머리 마법사는 그 길로 새벽이면 엘더 곳곳을 돌아다니며 엘더 전역을 망라하는 마법진을 완성시켜나갔다. 엘더 전역이니 그야 무지막지한 넓이였지만, 그녀는 마법사였다. 물론 엘더 시청의 허가도 받지 않았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언제나 그렇다!


닷새는 넘게 들인 듯한 그 준비는 「스타더스트 샤워」, 그러니까 유성 추락일 전날에서야 마무리되었다. 유성 추락 당일, 아이샤는 루벤 쪽으로 통하는 엘더의 서쪽 산에 올라있었다. 엘더 전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시작된 걸까?”


하늘은 아직 잠잠했지만, 아이샤는 이미 눈치챘다는 듯 전신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벗어던졌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닌다고 해서, 레이븐처럼 신체 부위 중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젠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그렇다. 마법사들은 별 특별한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상시로 로브 같은 걸 뒤집어쓰고 다니곤 하는 것이다. 로브는 산의 강풍에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초파리의 날개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곳은 그녀의 왼손 약지일 것이다. 그것은, 아이샤의 힘이 봉인되었다는 그 반지임이 틀림없었다.


“내 생명력을 다한 최강의 마법! 드디어 시험해볼 수 있겠어!”


아이샤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었다. 지팡이는 엘더 쪽을 향했는데, 곧바로 눈앞의 엘더 상공에 그 큰 도시를 가득 덮는 마법진이 그려졌다. 여기까지 왔으면 엘더의 왕실 마법사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달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마법 서적을 써 내려가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나 실전에서는 17살의 천재 마법 소녀에게도 밀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이샤의 왼쪽 눈은 어느샌가 초점이 눈금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막 사용한 마법의 영향이다. 도화선이 타들어 가듯, 눈금은 천천히, 야금야금 좀먹힌다. 하지만 결코 느린 속도는 아니었다. 아이샤는 마력을 한순간에 불태워버릴 줄 아는, 엘리오스에서도 몇 안 되는 화끈한 스타일의 마법사였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유성이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금이 가속한다. 다섯 칸, 네 칸, 세 칸, 아니 두 칸. 마지막 눈금이 사라졌을 때, 아이샤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다. 


쑥대밭이 된 도시는 하멜이다. 그곳은 원래부터 변변치 못하게 여기저기서 물이 새곤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홍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직 유성이 추락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 ※ ※





엘리오스에 마족은 실존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멜을 침공해 그 영토 대부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건 거짓이다. 부풀리기는커녕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격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족은 어느 시대고 샌더만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하멜의 붕괴는 물의 신녀의 폭주가 원인이었다. 그 무렵의 하멜은 완전한 수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는 물에 의해 멸망해가고 있었다. 헬퍼트가 물의 신녀를 막지 못했다면 실제로 그런 결과를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물의 신녀의 가녀린 몸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데는 성공한 헬퍼트였지만 그 무거운 갑주를 입고 헤엄을 치는 제주는 없었다. 그는 그렇게 물의 신녀와 함께 수장되어 하멜의 전설이 되었다.


헬퍼트의 아들 청이 수호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파괴된 영토가 수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 물의 신녀가 사라진 하멜은 더는 근심·걱정이 없어진 듯 평온의 시기로 들어섰다. 청도, 구름이 갈라지고 유성이 그 고개를 내밀기 전까지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한 하멜의 수호자였다.


가장 먼저 유성을 발견한 하멜의 주민 중 한 명이었다. 모두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렸을 때다. 그는 피이잉, 하는, 불꽃이 하늘에 쏘아 올려진 것만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공존의 축제 기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고, 이런 아침부터 불꽃을 쏠 이유라고는 없었다. 대피 신호치고는 너무도 고요하다. 거리로 뛰쳐나온 남자는 문득 군에서 복무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멜의 징병제는 물의 신녀 폭주 이후부터 죽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 이건 틀림없이 그 든든하기 그지없던 신호탄 소리다. 다음 순간 남자는 유성 추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을 소리치고 있었다.


“「아겔다마」다!!!!!“


「아겔다마」의 폭음은 그 목소리를 묻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건물의 일부가 천 쪼가리처럼 날아다니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왈칵 솟아올랐다. 모두가 지진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멜은 유성이 떨어지기 한 발 앞서 초토화되었다.


청은 갑주 상태로 공중에 뜬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어째서…! 청!!“


쉰 소리로 그렇게 소리친 만신창이의 남자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붉은 기사단의 십부장인 페넨시오였다. 하지만 청에게는 그 모습이 죽은 아버지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적백의 갑주가 시야를 요동치게 만든다. 발작적으로 총을 꺼내 쏘자 기사단장은 절명했다.





※ ※ ※ 





란은 걸을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하반신이 따로 마취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반신 마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일상을 세세히 묘사하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라면 모를까, 글로 그런 묘사를 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따분함을 불러일으키는 법이고, 누구도 그러길 바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다.


그래서, 란으로서는 엘 수색대에 들어가는 것도 가까스로였다. 알다시피 엘 수색대가 주로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모이는 양성소 그 비슷한 모임이긴 해도 어중이떠중이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란에게는 다행히도, 아니 역시 슬프게도 나름대로 마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란이 엘소드 일행을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다. 물론 좋은 인연이라곤 부르기 힘들겠다. 그들과의 만남으로 란은 변해버렸다. 그가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할 때면 나무 휠체어를 타고서 식사 준비를 돕곤 하던 활발했던 그가,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들의 밝은 모습에서 살아갈 희망을 공급 받던 그의 부모님은 덩달아 멍하니 창밖의 모래폭풍을 응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동생이라고 해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라는 여우를 신으로 모시는 이상한 종교에 빠지더니, 대뜸 엘 수색대에 들어가버렸다. 그리고는 엘소드 일행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라는 집에서 들으라는 듯이 그 사실을 으스댔다. 그런 수색대원들과 같이 지낸다니, 이것 좀 싸 들고 가렴. 예의는 지켜야지. 엄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날, 란은 사라져버렸다. 아라는 엉엉 울며 오빠를 찾아 헤맸지만, 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란의 행방은 대체 어디를 향했는가, 하는 의문에는 예언서도 완전히 빗나가지는 않았다 해야 하리라. 실제로 그는 물의 신녀를 납치하기는커녕-그 무렵 물의 신녀는 물고기들의 배 속에서 이미 소화까지 끝마쳐진 상태였다-마족 군단장도 되지 못했지만, 마족은 될 수 있었다. 란은 마족의 힘으로나마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같은 부대의 하급 마족들도 비실비실한 란을 무척 잘 챙겨주었다.


‘이런 매일이 계속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두려움마저 품게 된 어느 날이었다. 야간 보초를 서던 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엘 수색대, 그리고 레나의 화살이었다. 다음 순간 란의 오른쪽 팔이 허공을 날았다. 란은 흙바닥으로 벌러덩 쓰러졌다. 여기서 일어나봐야 그들에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멈춰!! 우리 오빠야!!“


일행 중에는 그의 여동생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엘소드 일행을 거스른 건 처음인지 아라는 덜덜 떨면서도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니, 저 자식은 마족이야!“


엘소드가 소리쳤다. 아라는 반쯤 울먹이며 사정했다.


”내가 데려가서 잘 보살필게! 응? 제발 부탁이야!“


”하지만 저 자식은 마족이야!“


”그래! 마족이라구!“


엘리시스도 합세했다. 엘리시스는 남동생의 잣대 있는 리더십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아~ 귀찮아! 팔도 날아갔는데 그냥 죽여주는 게 낫지 않겠어?“ 아이샤가 말했다.


사실 그들은 때때로, 주로 아라가 자기 오빠의 이야기를 주절거리기 시작할 때면 란을 못살게 굴었던 과거에 대한 씁쓸한 후회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란은 마족이 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들은 곧바로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런 무리였다. 무언가 구실을 주기 전까지는 자기는 추호도 나쁜 사람이 될 마음이 없지만, 그런 구실이 생기기만 하면 벤더스보다도 비열해지는 무리였다. 란은 발악 끝에 두 동강 난다. 마족이 되기 이전보다 심한 꼴이었다.


아라로써는 마력이 남아있어 썩지 않는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는 게 고작이었다. 엘소드 일행에게 복수할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과연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후 그녀는 마치 잠든 것 같은 란의 상반신을 챙겨선 베스마로 은둔한다. 그 부락을 관리하는 부크부크 족은 아라를 꺼려했는데, 인간이 아닌 요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죽은 가족의 상반신을 집안에 두는 것 정도야 베스마에선 별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엘리오스 멸망의 날이 찾아왔다.


아라는 어두운 방바닥에 누워 떨고 있었다. 평소처럼 오빠의 왼손 검지를 입에 물고 있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왼팔과 이어진 란의 상반신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아라의 입에서 흘러 나온 타액이 바닥에 한 방울만큼 더 고였다.






※ ※ ※ 




아직 나오지 않은 인물이 누구인지, 아마 다들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벼르고 기다린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이 불쌍한 남자의 이야기는 짧게만 하고 넘어가야겠다. 24살에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간 것과 다름없는 행보를 걸은 이 남자는 언제고 자신의 인생을 수치스러워했다.


엘을 찾는 모험이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무렵,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귀의 평원의, 추락한 블랙 크로우 호에서 발견된 그의 시체는 머리가 다 타서 형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나소드 핸드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곤…


그는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낸 것으로 예상되는 한 고물 나소드에게 유서를 입력해놓았다.


‘미안해. 아무튼, 미안하다. 모든 게, 그래.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 ※ ※ 





다시 돌아와 알테라 코어, 구름이 허겁지겁 물러나고 그 틈새로 유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기가 희미한 진동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석의 연분홍빛이 웅웅, 반응해왔다. 애드는 무릎을 꿇고 앉아, 팔을 둘러 비석을 품에 안았다. 

눈을 감자 유성이 추락했다. 


엘리오스의 끝이었다.















[ㅎㅎ재미로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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